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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cm 도시미학
    도시/Folders 2020. 11. 22. 05:47

    과거 우리나라의 피맛길을 기억하는가? 사람이 말을 피해 다니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그 길이 나에겐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은 언제나 효율을 위해 늘 피해야 하고 비켜서야 했다. 애초 목적이 양반이 아닌 자, 말을 소유하지 못한 가난한 서민을 위한 길이었다. 후에 재개발이 되었지만 애초 목적이 피해 다니는 길, 음지에 있으며 숨어 다니는 길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 채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버린 그 길. 길의 목적 자체가 걸어 다니는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니었다. 밝은 빛, 넓고 쾌적한 길은 늘 말을 타거나 빠른 이동이 가능한 마차 혹은 그걸 소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선이 되었다.

     

    오늘처럼 양반도 없고, 노력하면 자동차도 소유할 수 있는 이 시대에 과연 이러한 길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자동차를 타는 자, 자전거를 타는 자, 걸어 다니는 자 모두가 넓고 쾌적하고 밝은 빛을 쐬며 속도에 따른 바람의 다른 세기도 느끼며 도심을 활보하고 싶지 않은가?


    전부터 도시의 거리는 더 빠른 속도를 위해 디자인되어왔다. 속도를 빨리 낼 수 있는 운송수단에 맞추어 자동차, 대중교통, 자전거, 사람 순으로 도로의 면적이 배분되었다.

     

    12cm의 높이는 도시의 스케일에선 보이지도 않는 작은 크기지만 이 높이에 의해 나뉘고 형성된 도시의 시스템은 삶을 큰 영향을 끼친다.


    개인적으로 효율적인 이동의 첫째 조건은 거침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침이 없다는 건 이동을 방해하거나 멈추게 하는 요소가 최소화되어 있다는 상태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길을 걷다가 건너편 인도로 건널 때를 생각해보자. 내가 서 있는 곳의 단을 내려와 횡단보도를 거쳐 다시 단을 올라야 한다. 길 하나 건너는데 두 번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거쳐야 한다.


    반면 자동차는 신호대기로 멈췄다가 출발해도 같은 레벨의 이동일 뿐이지 오르내리는 경우는 과속방지턱을 제외하고는 없다.


    단을 오르는 수고가 운전대와 액셀레이터를 밟는 수고보다 결코 더 가볍지 않다. 다시 말해 이는 도시의 거리는 사람의 이동에 대한 배려가 없다 걸 의미한다.


    우리는 단을 오르는 사람들의 수고를 생각해야 한다. 특히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이나 지팡이를 짚는 거동이 불편한 분들에겐 결코 작은 단위의 높이가 아니다.

     

    만약 우리의 도로가 빨리 가고 싶어 하는 자들만 단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거치게 하고 급하지 않은 사람은 같은 레벨이 끊기지 않고 이동하게 하면 어떨까? 단을 오르는 수고는 차량에만 주면 안 될까? 횡단보도를 인도 레벨에 맞추어 배치하고 자동차가 단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지게 하는 것이다. 만화나 영화에 나올법한 감정을 느끼는 자동차가 아닌 이상 힘들어하는 자동차는 한 대도 없을 것이다. 또한 과속방지턱과 같은 역할도 겸해서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없는 경우도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존의 횡단보도에서 단을 오르내리는 수고가 사람에게 있다 면, Ⓒ유무종
    이런식으로 횡단보도의 높이를 인도에 맞추자는 것이다. Ⓒ유무종

    12cm는 분명 작은 스케일이지만 우리의 도시와 삶에는 큰 영향을 미치며, 도시계획의 기본이 된다. 공간을 다루는 사람들은 우리의 도시를 살기 좋은 도시로 바꾸려면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작은 단위의 도시 인프라부터 살펴보면 어떨까?

     

    Archivity - 유무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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